소련의 우주정거장 -정거장의 기원과 1세대 샬루트 by 티르

저번에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미국우주 개발 이야기한 포스팅에 댓글에 달린 댓글

그러고보니 우주정거장의 기원은 누군가 하다가 번뜩 정거장이 포스팅 하고 싶어지더군요

그래 이번에는 이거다! (그렇게 잊혀지는 N-1)


1. 우주정거장의 기원


 우주정거장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시간을 쭉 거슬러 올라가서 1869년 미국의 목사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에버레트 헤일이 월간지 Atlantic에 올린 연속물 [The Brick Moon]에서 그 개념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내용은 벽돌로 만든 달을 하늘로 쏘아올려 선원들의 지표로 삼고자 했지만 약간의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탑승한체로 발사되고 다행이(?) 그들이 생존한체로 벽돌달에 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주 정거장 뿐만이 아니라 인공위성의 개념또한 제시했는데 (200피트 상공으로 올라가 선원들의 위치 확인을 도와주는 벽돌로 만든 달) 당시로써는 매우 황당한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에는 그 개념이 실제화되어 똑같은 역활을 하는 "합금으로 만든 달"들이 떠다니지만요.

 한편 개념이 아닌 진지하게 우주 정거장을 생각하고 논의한 사람은 소련 우주개발의 할아버지 콘스탄틴 치올콥스키와 베르너 폰 브라운과 함께 미국 로켓 개발에 지대한 공언을 한 독일 과학자 헤르만 오베르트입니다.

 치올콥스키는 1920년 출간된 "Beyond the Planet Earth"에서 다단식 로켓을 설계하고 동시에 20명 정도가 거주하면서 안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인공 중력을 생성하는 우주 정거장을 처음으로 주장합니다.
 오베르트 또한 1923년 " The Rocket Into Interplanetary"와 1929년 "The Way to Space Travel"에서 궤도 우주선의 재급유를 맡는 우주 정거장과 지구의 날씨를 관측하는 우주정거장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기 루마니아의 Hermann Obreth가 "The Problem of Space Travel"에서 SF영화에 아주 자주나오는 인공중력을 발생시키는 원형 우주정거장에 각각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모듈과 그 모듈들을 우주에서 조립한다는 현대식 우주정거장의 개념 또한 제시했습니다.
헤르만의 우주정거장 설계

 2차세계대전 나치 과학자들이 궤도 병기를 만들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니 패스

그리고 나치 때 버릇 못고친 베르너 폰 브라운 이 양반도 우주정거장 그것도 원형 우주정거장(!)을 제시했는데 이 분은 워낙 유명해서 인지 유튜브 영상으로도 남아 있더군요



1956년도 영상입니다. 그가 최초로 우주정거장을 주장한 시기는 1951년이니 상당히 뒤에 나온 영상이죠. 프로젝트 호라이즌보다 8년이나 빨라 ㅡㅡ;; 근데 왜 그때는 안 원형정거장요? 후반부에 건설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원뿔형 드론이라니 현재도 못하는일을... 뭐하는 양반입니까 이거. 뭐긴 뭐야 외계인 고문이지

어쨋든 베르너의 야심찬 계획은 기술의 한계상 그리고 미국 정부의 자금줄상 채택되지 못했고 그는 아폴로 계획에 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베르너가 헤르만의 생각을 추진하고 있을때 소비에트의 (주로 체로메이의 OKB-52)는 치올콥스키의 우주정거장을 추진중이였습니다.
OKB-52는 OKB-1과 함께 Almaz 프로그램을 이끌었고 결국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샬루트 1호를 만들어 냈습니다.



Almaz 프로그램과 샬루트 


소유즈 11호에서 찍은 샬루트 1호

샬루트 와 알마즈 프로그램은 같지만 다른 프로그램인데 샬루트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순수하진 않았겠지만) 우주정거장 개발/연구 사업이였다면 2호와 3호 그리고 5호 취소된 7호까지는 알마즈 프로그램이 끼면서 본격 우주전쟁 실험 프로그램이 되기 때문입니다. 레이건이 스타워즈를 제창하기 수십년 전부터 소련은 우주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군사적 우주정거장의 목적인 알마즈 프로그램은 샬루트 보다 훨씬 전 부터 연구중인 물건이였습니다.

괜히 폴류스 같은 괴물놈이 튀어나온게 아닙니다....

민간 프로젝트인 샬루트와 군사 프로젝트인 알마즈는 코드로 구분이 가능한데 주로 OKB-1에서 개발하던 민간용 샬루트들이 DOS를 쓰는 반면에 알마즈의 샬루트들은 주로 OKB-52에서 개발되었고 OPS의 코드를 받았습니다. 

샬루트 프로그램은 1971년부터 1986년까지 15년 동안 진행됬습니다.

1세대 샬루트

루트 1호 (DOS-1) 

1971년 4월 19일 세계 협정시 1시 40분 프로톤 K로켓에 실려서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샬루트 1호가 발사됩니다. 통신 구역, 승무원들이 거주하는 중앙 구역, 리프트 보조 시스템 등등이 들어있는 보조 구역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리온 1 우주 망원경이 있는 길이 20m 최대 직경 4m의 샬루트 1호는 세계 최로의 우주 정거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소유즈 10호 11호의 승무원들이 살다 갑니다.
하지만 소유즈 11호가 재진입중에 캡슐이 너무 일찍 열려서 승무원 3명 전원이 질식사하는 매우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고 소유즈 미션이 전체적으로 재 설계되면서 연기되었고 샬루트 1호는 텅 빈체로 궤도를 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사된지 6개월 뒤인 71년 10월 11일에 지구 대기권으로 재 돌입하면서 잛은 정거장 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DOS-2

이 이름없는 정거장은 샬루트 1호와 비슷하게 설계됬지만 1972년 7월 29일  발사후 프로톤 로켓 2단이 폭팔해 궤도진입에 실패 태평양 한가운데에 착수하게 됩니다. 네 이놈 프로톤 얼마나 많은 위성을 잡아먹은게냐!

샬루트 2호 (OPS-1)

처음으로 군사적 목적의 우주정거장으로 채택된 샬루트 2호는 길이 14.55m에 최대 직경 4.15m의 크기로 1973년 4월 3일 협정시 9시 정각에 발사되었습니다....만! 발사된 후 3일뒤 샬루트 2호를 궤도에 안착시킨 프로톤의 3호 엔진이 폭팔! 해버립니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13일뒤 샬루트의 궤도가 떨어지고 폭팔이 샬루트에 궤도 조정 시스템에 고장을 준 뒤 정거장 모든곳에 불을 내버려서 산산조각 나 동년 5월 13일 태양전지판을 포함한 일부 잔해가 재진입하고 28일 나머지 잔해들도 모두 재진입하게 됩니다. 
 잔해중 일부는 태평양 어딘가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코스모스 557 (DOS-3)

미국의 스카이랩이 발사되기 3일전인 1973년 5월 11일 차세대 민간 우주정거장으로 발사됬지만 비행시스템의 오류로 지상 관제를 벗어난뒤 내부 연료가 소진 될때까지 궤도 수정 로켓이 점화되버렸습니다. 당시 이미 서방 레이더에 정거장이 포착된 상태였지만 소련 정부는 그...그냥 코스모스 557 이라는 위성 발사한거라능! 이라고 서방을 속였고 1주일뒤 재진입하는 도중에 불타버립니다...아니 얘네는 왜 서방이랑 비슷할때 발사하면 이렇게 폭망하냐

샬루트 3호 (OPS-2)

2호의 실패를 딛고 1974년 6월 25일 협정시 4시 15분에 프로톤 로켓에 실려 발사됩니다.
OPS이란 코드에서 알수 있듯이 군사적 성향을 지는 이 샬루트에는 지구 관측 카메라와 함께(필름을 지구로 던지는 형식의)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장비가 탑재되어 있었는데 바로 자기 방어용으로


당시 폭격기 방어용 기관포로 쓰이던 23mm NR-23 기관포가 탑재되었다는 것입니다.(단 23mm인 NR-23인지 30mm인 NR-30인지 R-23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그런데 기관포가 탑재된건 확실해요) 무반동 처리는 되 있었겠지??
7월 14일부터 15일동안 샬루트 3호에 머물렀던 소유즈 14호의 선장 Pavel Popovich의 주장으로 확인된 이 포의 존재는 당시 지상을 향해 발사하도록 명령 받았다고 합니다. 탄이 고갈될때 까지 발사했던 이 포는 최소 3번의 발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8월 26일 소유즈 14호가 떠나고 나서 15호가 왔지만 도킹장치의 이상으로 도킹을 할 수없었고 수동 도킹도 불가능 했기에 15호는 도킹을 포기하고 재 귀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련 군부는  이후의 소유즈를 샬루트 4호를 위해 돌리기로 하고 무인으로 운용하다가 1975년 11월 24일 재돌입 태평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샬루트 4호 


1974년 12월 26일 협정시 4시 15분에 발사된 샬루트 4호는 X-ray 측정 장비를 장착해 전갈자리 X-1과 백조자리 X-1등을 관착했습니다.
소유즈 17호와 18호 최종적으로는 20호가 샬루트와 도킹했는데 18호는 발사후 궤도진입에 실패 18호 a라는 이름을 받고 승무원이 교체된후 다시 발사되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20호는 원래 3호에서 할 임무였던 소유즈와 샬루트의 도킹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인으로 발사됬습니다.

샬루트 4호는 발사후 770일 후인 1977년 2월 3일 궤도에 재진입하게 됩니다.

샬루트 5호(OPS-3)

1976년 6우러 22일 협성시 18시 4분에 발사된 샬루트 5호는 전임자인 2호와 3호와 비슷했다고 하는데 3호처럼 무기를 탑재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과학적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총 4개의 소유즈가 방문 할 예정이였고 첫번째 임무는 장기간 진행될 예정이였습니다만 1976년 7월 6일에 시작된 소유즈 21호의 첫번째 미션 도중 공기의 오염이 심각해져 8월 24일 샬루트 5호를 떠나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장기간인데?
그리고 1976년 10월 14일 소유즈 23호가 올라왔지만 도킹도중 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임무를 끝내지 못하고 16일 돌아와야 했고

1977년 2월 7일 소유즈 24호가 올라가 오염된 공기를 제거하고 우주관측을 했지만 25일 귀환해야했습니다

그리고 4번째 임무는 샬루트의 연료 잔량이 유인 임무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 결국 취소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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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 발사된 샬루트 6,7호는 2세대 수명이 늘어나고 승무원의 장기간 거주를 위한 공기 정화기와 소유즈와의 장기 도킹가능 그리고 재 보급이 가능한 제 2세대 우주 정거장이 됩니다.

근데 시간이 많이 늦어서 졸리군요 제 2세대 샬루트부터는 나중에 마져 쓰도록하겠습니다. 

To Be Continue?

덧글

  • 홍차도둑 2013/11/16 01:32 # 답글

    '벽돌 달' 의 경우 몇몇 서적에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중 하나가 "벽돌"을 선택한 것을 들더군요. 그 이유가 대기권 돌파와 진입을 위해 열에 상당히 강한 재질을 써야 하니까...지금도 대기권 재진입시에는 비슷하기 때문에 선구적인 것이라고 들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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